‘어려운 국악’을 위한 변명
- 2,049
- 0
- 글주소
여러분은 국악을 어떤 경로로 접하시나요? 사극 드라마에서 ‘풍악을 울려라!’라는 어명으로 연주되어 듣게 된 적, 혹은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국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잠시 귓등을 스친 적도 있을 거예요. 아니면, 잠을 청하거나 명상을 위한 음악을 검색하다 어쩌다 걸려 듣게 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럼, 자의적으로 ‘국악’에 관심이 있어서 검색을 해보고, 꾸준히 찾아 듣는 분들은 얼마나 될까요? 전공자를 제외한다면, 글쎄요... 대부분의 여러분께 ‘국악’은 낯선 존재죠.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이런 여러분께 왜 국악은 어렵게만 느껴지는지, 국악을 위한, 세 가지의 변명을 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 이유, 한자
우리에게 국악이 어려운 이유, 그 첫 번째는 ‘한자’에 있습니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경모궁제례악(景慕宮祭禮樂), 취타(吹打), 영산회상(靈山會上).’ 길이도 길고 한자까지 따라오는 이 단어들은 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놀랍게도, 곡의 제목들이에요. ‘Next Level’, ‘롤린’, ‘비와 당신’같은 쉬운 제목이면 몰라도, 저런 고난이도의 한자라면... 여러분의 당황스러움을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양해해 주셨으면 하는 부분이 있어요. 지금 우리에게 ‘영어’가 익숙하듯, 국악이 생겨난 과거에는 ‘한자’가 필수였거든요. 그렇다 보니 곡의 제목도 한자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럼 위의 제목들을 하나씩 살펴볼까요? 예를 들어, ‘종묘제례악’은 ‘종묘’에서부터 시작하면 쉽습니다. 종로의 광장시장 옆에 있는 ‘종묘’를 알고 계시나요? 조선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죠. 종묘제례악은 바로 그 종묘(종묘)에서 제사를 진행할 때 사용한 음악(제례악)을 뜻해요. ‘경모궁 제례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경모궁’이라는 곳에서 사용한 제사용 음악이 ‘경모궁 제례악’인 것이죠. 생각보다 단순하죠? 이처럼 우리 국악은 한자 제목이라는 난관만 거치면, 생각보다 가깝고 익숙한 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문화나 유물과 조금만 대입해도 그 뜻을 유추할 수 있는 국악이 정말 많거든요. 어떤가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저 곡의 이름들이 이제 눈에 들어오시죠?

두 번째 이유, 낯선 스타일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낯선 스타일’입니다. 사실 현재의 우리가 즐기기엔, 국악은 그 형식부터가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예를 들어볼까요? 연회, 즉 파티장을 떠올려보세요. 조명이 번쩍번쩍 빛나고, 비트가 난무하는 현대인의 파티장. 그만큼 빠르고 화려한 음악이 절로 떠오르실 텐데요.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전혀 달랐습니다. 왕이 “연회를 시작하라!”라고 선포하고 나면, 우리 선비님들은 매우 진중한 분위기에서 파티를 즐겼답니다. 유유히 술잔을 기울이며 가무를 관람하는 데 있어, 빠른 비트보다는 느리고 단조로운 연례악(宴禮樂)이 찰떡이었죠. 소리를 차단한 채, 두 장소의 장면을 번갈아 상상해보세요. 정말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두 장면이죠. 그만큼 두 시대의 스타일은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연회곡이 현대에서 ‘명상음악’으로 사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겨나기도 했고요.
여기에서도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면, 우리가 국악을 ‘느리다’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서양음악’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에요. 서양의 음악은 비트(Beat), 즉 심장 박동과 비슷한 2박 계열이 주가 되지만, 우리의 음악은 3분박의 계열로 진행되거든요. 혹시, 동양 무도에서 기본이 되는 단전호흡을 경험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단전호흡은 마시고 내쉬는 것을 세 호흡으로 나눠서 진행해요. 이처럼 우리나라와 서양은 호흡에서부터 박자를 인식하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조선시대에서는 선비가 빨리 걷고, 빨리 행동하는 것을 양반의 철학과 품격을 손상시키는 행동으로 인지했던 영향도 있을 테고요. 서양의 관점으로만 우리의 국악을 판단하다 보면, 국악의 진짜 가치를 놓칠 수도 있겠지요.
세 번째 이유, 고정관념
국악이 어려운 마지막 이유, 국악에 대한 ‘고정관념’이 한몫하고 있습니다. ‘국악’하면 지루하고 따분한 음악을 떠올리시는 분들, 이런 분들을 위해 ‘이날치 밴드’와 ‘씽씽밴드’을 언급해보겠습니다. 2021년 이 두 팀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죠! 여러분이 보시기에 이날치밴드와 씽씽밴드의 음악 장르는 무엇일까요? 록? 팝? 국악? 그들의 음악에 있어 ‘국악’은 전부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음악들의 뿌리는 분명히 17-18세기 조선시대 민중음악에서 나왔죠. 그렇게 보면, 우리는 조선의 ‘히트송’들을 당대에 함께 즐겼다가, 지루해했다가, 이제 다시 반기게 된 것입니다. 어떠신가요? ‘국악’은 항상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생각이야말로 가장 지루한 고정관념처럼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여러분이 ‘국악’이라는 정의 속에 가지고 있는 편견을 조금만 내려놓으신다면, 보다 더 진정한 ‘국악’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국악’은 우리가 대중매체나 인터넷에서 어쩌다 듣게 될 뿐인 우리의 전통 음악이 되어버린 듯한데요. 범접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의 옛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음악일 뿐입니다. 바쁠 것 하나 없이 여유를 부리며 내는 그 소리는 우리에게 천천히 숨을 쉬며 달려가라고, 때론 늑장을 부려도 괜찮다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아요. 오늘 제가 글에서 언급한 ‘국악’은 궁중음악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어요. 궁중음악은 중국의 유교적 사상에 근거하고 있어 특히 더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요. 판소리, 민요와 같은 민간 음악은 또 다른 매력이 있죠. 다음 시간에 이 음악들을 만나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저의 국악을 위한 변명에 고개를 끄덕끄덕하셨다면, 다음 시간에 또 만나는 겁니다!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