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전쟁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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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연락이 닿지 않아 불안과 초조함이 밀려온 경험이 있을 거예요.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모두 그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기 때문이죠. 수많은 사람들은 서둘러 짐을 챙겨 집을 떠났어요. 가족, 친구, 연인과의 갑작스러운 이별과 기약 없는 기다림은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 절망과 분노를 안겼어요. 사람들은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섰죠. 자금을 모으고 물자를 지원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문화 예술계에서도 예술은 칼보다 강하다는 걸 보여주려 하고 있고요.
👀발레리아의 미소가 보이나요?
발레리아는 여느 아이처럼 토끼 인형과 분홍색 가방을 좋아하는 소녀였어요. 그녀는 9월에 있을 첫 등교를 꿈꾸고 있었죠. 그러나 발레리아는 그 모든 것을 놔둔 채 우크라이나를 떠나야 했습니다. 전쟁으로 나가야 하는 아빠, 오빠와는 하루아침에 이별을 해야 했고요. 피난민으로 가득 찬 기차역에서 엄마 손을 꼭 붙잡고 18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겨우 기차에 탈 수 있었습니다. 폴란드 국경을 넘어서야 발레리아는 기다리던 봉사자들에게 따뜻한 인사와 음식을 받을 수 있었죠. 그리고 남겨진 한 장의 사진. 그 사진은 중절모와 검정 선글라스를 걸친 익명의 설치예술가이자 사진가 JR에게 전해집니다.
JR은 소녀의 사진을 45m 대형 천에 인쇄한 다음 돌돌 말아 차에 싣고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 도착해요. 3월 14일. 키이우 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에서 부모 손을 잡고 나온 아이부터 군인까지 시민 100여 명의 도움을 받아 대형 천을 펼쳐 보이고 거리를 행진하기 시작합니다. 발레리아의 미소가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퍼졌죠. 드론으로 찍은 그날의 사진은 ‘우크라이나의 회복력(Resilience of Ukraine)’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커버를 장식합니다. 발레리아의 미소는 전세계로 퍼졌어요. JR은 인스타그램(@JR)에 퍼포먼스 영상을 올리면서 “말 그대로 차를 몰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일어난 전쟁은 처음”이라며 “이 어린 소녀는 미래이며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상기하게 한다”라고 말했어요. JR은 퍼포먼스 영상과 사진을 NFT로 발행하여 수익금 전액을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 난민을 지원하는 데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답니다. 그는 오늘도 세계 각 지역에서 발레리아의 미소를 띄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꼭 노래를 부르며 함께 춤을 출거야
우크라이나의 인기 밴드 그룹 안티틸라(Antytila)는 전쟁이 일어나자 마이크와 기타를 내려놓고 전선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장기로 보탬이 되려 했던 안티틸라는 영국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자선 콘서트에 원격으로 나서 노래를 부르려 했죠. 하지만 그룹의 멤버들이 군인이라는 이유로 주최 측으로부터 출연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자선 콘서트에 참가했던 영국의 유명 팝 가수 에드 시런은 이 소식을 접하고 함께 협업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에드 시런은 이미 지난 4월, 작년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촬영한 <2step>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뮤직비디오와 음원으로 인한 수익을 모두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죠.
그렇게 제작된 뮤직비디오가 5월 2일 공개되었어요. 전반부에는 우크라이나 소년 댄서 올렉시 소콜로프가 등장합니다. 객석이 텅 빈 극장에서 홀로 춤을 추던 그는 장면이 바뀌어 파괴된 건물 잔해 위에서 춤을 이어가요. 2절에서는 장면이 바뀌어 집에서 춤을 추는 한 소녀가 등장합니다.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고 소녀는 엄마와 함께 피란길에 오르죠. 밤새 이어지는 피란길 사이에 잠시 자동차에 내려 춤을 추는 소녀. 그리고 쪽잠에서 깨어 소녀를 쳐다보는 엄마가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급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죠? 예상하셨겠지만 제작 과정 또한 결코 평온하지만은 않았답니다. 러시아군이 점령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 살던 소콜로프는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키이우로 왔어요. 안티틸라는 키이우 근처 한 스튜디오에서 30분 만에 녹음을 진행하고 제2도시인 하르키우로 이동하는 도중 10분의 틈을 이용해 자신의 촬영분을 소형 카메라로 급하게 담았고요. 아이 셋의 아버지인 토폴리아는 “전쟁터를 탈출하는 가족을 통해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처한 고통스럽고 어려운 상황을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어요. ‘사이렌이 우리의 잠을 방해했다’로 시작하는 그의 가사는 러시아 침공 첫날을 묘사하죠. 또한 그는 “조국에서 더 이상 어린이들이 마음껏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뛰어놀 수 없게 돼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어요. "상황 자체가 매우 끔찍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내면의 감정을 끌어모으는 것뿐"이라면서도 "우리가 승리할 때 모든 감정은 노래와 가사로 퍼져나갈 것이며 그것을 전 세계와 공유하겠다"라고 덧붙였답니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그리고 영웅들에게 영광을
전쟁이 발발하고 이틀 뒤인 26일. 서울 아현동에 위치한 한국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 우크라이나 교민들이 모여들었어요. 20명으로 예정되었던 대성당에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 부부를 포함해 총 80여 명의 교민들이 참석했죠. 오후 12시. 예배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 가슴에 성호를 그었고, 일부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발언을 마치며 “Slava Ukraine(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다 함께 “Heroyam Slava(영웅들에게 영광을)”이라고 답했습니다. Slava Ukraine(우크라이나어: Слава Україні)은 1917년 우크라이나 독립 전쟁에서 유래된 말인데요. 2018년에는 우크라이나군의 공식 경례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러시아 침공에 대항하기 위한 저항의 상징으로 통용되고 있답니다.

그리고 4월 3일. 국내에서는 저항의 상징, Slava Ukraine을 외치는 전시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부展 : Slava Ukraine'가 16일까지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협조를 받아 전쟁 현장 사진과 영상을 전시하고,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하는 국내외 작가 40여 명이 자신의 작품을 판매했죠. 그 수익금은 모두 대사관에 기부되었어요. 사람들의 관심에 힘입어 5월 2일에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부展 : Heroiam Slava’가 연이어 개최되었고요. 전시에 참여한 작가 토아치는 말했습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많은 죄 없는 민간인들이 고통받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들이 흘린 피와 눈물에 조의를 표하며, 이번 기부 전시를 통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외에도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와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공동으로 ‘우크라이나 평화 기원 전시회’를 열어 조속한 종전과 평화를 기원했어요.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많은 전시와 공연을 기획하는 예술가들의 행렬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답니다.
💬Editor’s Comment
‘All you need is love, love. Love is all you need’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노래는 바로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입니다. 베트남 전쟁이 절정에 이르던 1967년. 최초로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여 라이브로 위성중계하는 TV 프로그램에서 3억 5000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틀즈는 이 노래를 불렀어요. 비틀즈의 멤버이자 작곡가인 존 레논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에요. 전 혁명적 아티스트입니다. 제 예술은 변혁을 가져오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예술은 전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여전히 총알은 빗발치고 폭탄은 떨어지며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연한 열세라고 보였던 우크라이나는 용감히 맞서고 있습니다. 그런 우크라이나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 역시도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을 다하고 있답니다. 작은 관심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겁니다. 마음이 평화를 닿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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