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을 훔치다, 리플리증후군을 통해 보는 <안나>
- 798
- 0
- 글주소
인스타그램을 보면 모두 행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사람들과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내죠. 내 인생만 이렇게 힘든 걸까, 다들 힘들면서 잘 사는 척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애써 괜찮게 나온 사진 몇 장을 올려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죠. 오늘도 행복한 하루! 나를 포장하기 위한 작은 거짓말입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디키는 나야, 둘이 될 순 없어.
이러한 경험은 단발성에 그칠 수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아무리 작은 거짓말이라도 반복하다 보면 돌이킬 수 없어지니까요. 심각한 경우엔 리플리증후군을 앓게 될 수도 있고요. 리플리 증후군이란 현실을 부정하면서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고, 거짓된 말이나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입니다. 여기서 잠깐! 리플리 증후군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진단명이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원래는 ‘공상 허언증’이라는 진단명이 따로 존재하는데요. 그럼에도 리플리 증후군으로 널리 알려진 이유가 있답니다.
이는 <재능 있는 리플리 씨>라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은 1955년 출판된 미국의 범죄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된 거죠. 리플리의 삶을 잠깐 들여다볼까요? 주인공 리플리는 불우한 편이었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친구인 디키 그린리프를 데리고 와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는데요. 이탈리아에서 만난 디키는 리플리와 달리 호화롭고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죠. 그런 디키의 모습에 리플리는 큰 질투심을 느껴요. 그래서 디키를 살해하고, 자신이 디키인 것처럼 살아가기로 합니다. 거짓말을 일삼으며 마치 그것이 실제인 양 행동하는 리플리의 뻔뻔한 모습에서 착안하여, 그와 유사한 증상을 ‘리플리 증후군’이라 부르게 된 것이랍니다.
😮내 이름은 안나가 아닌데~
쿠팡 플레이에서 제작한 두 번째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에서도 ‘리플리 증후군’을 중점적으로 다루는데요. 수지를 원톱 주연으로 내세우면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죠. 특히 1~2화를 요약한 영상은 유튜브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고요.
'나는 마음먹은 건 다 해요.' 유미는 마음먹은 건 다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지닌 학생이었습니다. 수능을 앞두고 음악교사와의 연애가 발각되면서 강제전학을 당하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솔직하게 살아갈 기회가 있었어요. 본격적인 거짓말은 원하던 대학에 불합격하면서 시작됩니다. 유미는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며 학교에서 사귄 남자친구와 유학을 준비합니다. 그러다 정체가 들통나 헤어지게 되고요. 이별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던 유미는 또래인 현주를 만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하는데요. 현주는 외국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하고 있었죠. 게으르고 신경질적인 현주 밑에서 일하던 유미는 결국 박탈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쳐요. 그리고 현주의 학력과 배경을 훔쳐 '안나'라는 이름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안나>는 정한아 작가의 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원작으로 하는 시리즈입니다. 요즘 <파친코> 등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는데요. 드라마를 본 뒤 원작에 관심을 가지게 돼 역주행하는 패턴도 흔히 볼 수 있죠. 이는 OTT 플랫폼이 경쟁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에요. 아무래도 원작 소설과 드라마 내용에 차이가 있으니까요.
<친밀한 이방인>도 마찬가지예요. 원작에서도 유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반복해서 보여주지만, 독자와 유미 사이의 감정적 거리가 드라마만큼 가깝지는 않아요. 소설 속 이유미가 신비롭다면 <안나>의 이유미는 연민을 자아낸달까요? 지어낸 삶의 개수도 다른데요. 가짜 경력서로 피아노 학원에 취직하고 평생교육원 강사를 거쳐 대학 강단에 선다는 내용은 드라마 속 유미와 비슷하지만, 소설의 유미는 훨씬 더 신분과 직업을 자주 바꿨어요. 대학에서 거짓 경력을 들킨 뒤에는 요양원에서 의사 행세를 했고, 그 뒤에는 가짜 소설가가 됐죠. 심지어 세 남자의 아내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았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요? 드라마 속에서는 유미만 거짓말을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모든 인물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에요. 유미와 유미의 아버지, 유미의 마지막 배우자인 선우진, 심지어 유미를 추적하는 ‘나’와 ‘나’의 부모까지도요.
💬Editor’s Comment
드라마 ‘안나’는 스스로를 숨기고 부정하는 주인공을 통해 진실한 삶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요. 요즘처럼 ‘보이는 나’의 모습이 중요해진 시대에 꼭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죠. 행복한 척과 행복은 어떻게 다를까요? 진짜 행복에는 진짜 내가 있다는 점이 큰 차이예요. 내가 아는 나 자신으로서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거죠. 리플리 증후군의 유래로 알려진 <재능 있는 리플리 씨>와 ‘안나’의 원작 <친밀한 이방인>의 작가도 결말을 통해 ‘진짜 나’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어요. 나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요. 나보다 멋진 사람, 내게 없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러운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하지만 부럽다고 그 사람과 나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다들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