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비 오는 날 플레이리스트 말고, 비 오는 날 보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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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리면 괜히 생각나는 것들이 있죠. 누군가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청하고, 또 누군가는 부침개를 먹으며 비의 낭만을 즐겨요. 저는 비를 주제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듣는 걸 좋아하고요. 예술가들은 내리는 비를 보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었지요. 실제로 비가 사람의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데요. 여름의 태양과 함께 찾아온 비 소식에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입니다. 비 그림 몇 점을 보며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보는 것 어떨까요?

 

☔반 고흐가 해가 아닌 비를 그린 이유

  이 그림은 해바라기로 잘 알려진 반 고흐의 작품이에요. 고흐의 작품 중엔 비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이 흔치 않은데요. 그래서 이 그림을 그렸던 당시 고흐의 마음이 더 궁금합니다. 비 내리는 들판을 그릴 때, 고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18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고흐는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어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창을 통해 비 내리는 들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캔버스에 담아내기 시작했죠.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도 썼습니다. 우울증이 때때로 자신을 잡아먹지만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말이에요. 대부분의 나뭇잎이 떨어졌다고 말하던 고흐는 그로부터 9개월 뒤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외로움과 우울감에 고통받던 고흐의 생을 떠올리면 이 비는 울적함을 불러일으켜요. 하지만 사실 고흐는 모든 자연을 사랑했답니다. 자연의 완전함을 목격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했고, 그 자연의 한가운데서 자신을 느낄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렇다면 이 그림은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네요. 계절의 순환 속에서 생명의 회복을 기다리는 밀밭처럼요. 

 

<Rain(1889)>, Vincent van Gogh ©Philadelphia Museum of Art 

 

🌧타지에서 비를 맞던 순간

 

 <Umbrellas under Big Ben(1938)>, Chiang Lee ©V&A journal

 

  폭우가 쏟아지는 풍경 속 빅 벤. 이 그림을 그린 치앙 리는 공무원이었어요. 하지만 당시 치앙 리가 거주하던 중국의 정부에는 부패와 족벌주의1)가 만연했고, 이에 환멸을 느낀 그는 1931년 직장을 떠납니다. 정치적 상황이 워낙 불안했던 시기라 아예 중국 땅 자체를 떠나기로 결심했죠. 그로부터 2년 뒤인 1933년, 가족은 미국으로 보내고 그는 홀로 영국으로 건너가 힘겨운 타국살이를 시작합니다. 치앙 리는 동료 작가들과 함께 조금씩 이름을 알렸는데요. 1937년에는 영국의 다양한 지역을 다루는 여행 이야기를 씁니다. '침묵하는 여행자'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이 글에는 장소를 묘사하는 13개의 흑백 삽화를 덧붙이기도 했죠. 여기에 바로! 비와 관련된 묘사가 있어요. 런던에 종종 내리는 비에 대한 감상인데요. 치앙 리는 돌풍을 동반한 이슬비가 얼굴에 닥칠 때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런던 사람들은 익숙하겠지만, 런던을 방문하는 타지 사람이라면 도시의 비를 견디기 어려울 수 있으니 피카딜리 서커스, 리젠트 스트리트 또는 웨스트민스터 지하철역 주변으로 가라고 조언도 했죠. 묘사한 그림에는 파도 같은 검은 우산들을 집어삼킬 듯 쏟아지는 세찬 비와 런던을 대표하는 빅벤이 보이네요.

  타지인의 시선으로 영국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이 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어요. 당시 서구권에선 생소했던 동양풍이었던 터라 이 부분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죠. 하지만 치앙 리는 진정으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려면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접근하지 말라고 말했어요. 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림을 봐야 한다고 했죠. 그는 출신을 떠나 한 명의 예술가로서 시적인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전달되기를 바랐을 거예요. 그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이를 작품으로써 공유하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줬는데요. 한편으로는 타국에서 고군분투하며 느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스며 있는 듯합니다. 기억을 통해 그림을 그린다는 중국의 관습이, 치앙 리가 중국에서 맞던 비를 연상케 했을 테니까요.

1) 족벌주의란 자신의 일족을 우선하는 태도를 말해요. 다른 표현으로는 네포티즘(Nepotism)이라는 단어가 있죠.

 

<Going to church in the rain, Wasdale Head (1937)>, Chiang Lee ©V&A journal

 

👀빗물이 눈앞을 가릴 때

 

<McGrath Highway (2006)>, Gregory Thilker ©gregorythielker

 

  비 오는 날 흔히 볼 수 있는 차창의 모습이죠? 사진 같아 보이는데, 이게 그림이냐고요? 네, 극사실주의(Hyperrealism) 작품을 그리는 화가 틸커의 작품이랍니다. 그의 그림은 마치 사진 같아요. 그는 이처럼 사실과 극도로 같은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질문합니다. <Under the unminding sky> 시리즈는 틸커의 대표작인데요. 그는 비 오는 날 자동차를 운전하는 시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어요. 차를 타는 순간부터 체험하게 되는 모순과 시각적 자극을 매력적으로 느낀 것이죠. 운전자는 차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사실은 도로라는 제한된 통로에 있어야 해요. 시시각각 변하는 차창 밖의 풍경은 현실의 왜곡을 보여주고요.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빗물에 시야가 흐려지고 나서야 비로소 똑바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빗물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물체의 모양과 빛은 서로 병합되고 압축되어 원래의 형태로 보이지 않죠. 마치 환상처럼요. 한편,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운전은 기억상실증의 놀라운 형태입니다. 모든 것이 발견되어야 하고, 모든 것이 지워져야 합니다.” 틸커가 이야기하는 운전자의 모순된 형태와 비슷하지 않나요? 틸커의 작품은 길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고 생각할 것을 권유하는 듯해요. 비가 그쳤을 때 다시금 분명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Angle(2008)>, Gregory Thilker ©gregorythielker

 

  이렇게 같은 비를 보고도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몇 작품만으로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비를 통해 공통된 감각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마치 하나의 구름 아래에 떨어지는 서로 다른 빗방울 같달까요? 그들이 비를 통해 느낀 감정과 생각을 작품에 담아냈으니, 우리는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그림 한 점을 걸어두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비 오는 날이 반가워질 거예요.

 

💬Editor's Comment

  저는 비가 오는 날이면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그 모양을 관찰해요. 빗방울이 어디에 떨어지는지에 따라 그 소리와 모양이 모두 다르니까요. 지붕, 도로, 나뭇잎, 창문마다 말이에요. 저는 이 관찰이 매우 즐거운데요. 여러분은 비 오는 날을 보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계신가요? 있다면 비 오는 날이 무척 설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러분도 이런 즐거움을 찾고 계신다면, 각기 다른 매력의 비 오는 풍경을 담은 그림을 만나 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소개해드린 그림 말고도 멋진 그림이 많을 테니까요! 어떤 그림을 발견하셨을지 저까지 기대되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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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7-28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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