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멜로가 체질이었던 박찬욱 감독의 복귀작
- 484
- 0
- 글주소
영화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한국의 대표 감독 박찬욱! 그는 이번에 감독의 메시지나 어떤 주장을 포함하지 않은 순수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죠. 화려한 볼거리나 기교 없이 최소한의 요소를 간결하게 구사해 깊은 감흥을 끌어내는 영화를 말이에요. 그 결과 이번 작품은 세계를 울리며 칸에서 감독상을 수상합니다. 사회적 계급, 빈부격차, 난민, 불법 입양 등 정치적 주제가 두드러진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가 가지는 아름다움을 표현해낸 것에 대한 찬사를 받은 건데요.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극장으로 모여들고 있는 지금, 영화관에 갈 결심을 하셨다면 ‘이 영화’가 참 많은 것을 말해줄 것 같네요.
🤝캐스팅할 결심
박찬욱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에 앞서 스토리보다 먼저 결정한 것은 배우였어요. 그는 시나리오 작업부터 배우 박해일과 탕웨이를 생각하며 스토리를 써나갔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죠. 일반적으로는 작가나 감독이 서사를 계획하고, 이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찾습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반대로 배우들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냈어요. 그것이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배우와 분리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비로소 개성과 생명력을 가진 인물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일까요?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정중하게 수사를 진행하는 꼿꼿한 형사 해준(박해일)과, 속을 알 수 없지만 왠지 가련하게 느껴지는 서래(탕웨이)의 인상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의 머릿속에 진하게 남습니다. 이외에도 똑 부러지는 해준의 아내 정안(이정현), 선배 해준을 따르며 수사 내내 질문을 던지는 후배 수완(고경표)과 연수(김신영), 해준이 쫓던 로맨틱한 살인 용의자 홍산오(박정민) 등의 조연들도 마치 제 옷을 입은 듯 매력이 넘칩니다. 무엇보다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표현되는 해준의 캐릭터는 박해일 배우의 입체적인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이기도하답니다.
🌈감정은 하나가 아니니까!
해준과 서래의 감정선을 바쁘게 따라가며 영화는 흘러갑니다. 하지만 감정은 결코 어느 하나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요. 기쁘다, 슬프다, 화난다, 불안하다 같이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영화에 녹아 있습니다. 그 감정의 경계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영화의 장면들이 이어지죠. 형사인 해준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현실을 또렷이 바라보겠다며 인공눈물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그는 점점 더 방황하게 됩니다. 관객 역시도 그 모습을 보며 서서히 피어난 감정 속에서 바른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안갯속에서 우리는 단일한 감정이 없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고는 미결된 감정만을 남기고 붕괴된 채로 영화관을 빠져나오게 돼요. 때문에 어쩌면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 찝찝함, 혹은 불안함으로 남을 수도 있어요.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알게 된 사실이라곤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 하나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는 깊은 여운으로 남기도하고,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사실적인 영화로 여겨질 수도 있죠.
🔍이야기의 시작, 디테일
어느 하나로 묘사되지 않는 이 복잡한 감정을 더욱 부각해주는 것은 바로 박찬욱 감독의 뛰어난 미장센입니다. 초밥, 핫도그, 석류 등의 음식과 스마트 워치, 반지, 립밤 같은 사물은 적재적소에서 은유와 비유로 이용되며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묘사해내거든요. 박찬욱 감독은 자기 자신을 디테일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 '넥타이를 매는 타입'이라는 식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했죠. 그렇게 신중하게 배치된 온갖 물건들의 구조와 배열에 관객은 취조하는 형사처럼 갖가지 의미를 불어넣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의 향연은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을 보조하는 묘사를 더욱 흐릿하게 만드는 안개와도 같아요. 더불어 세 개 이상의 장면을 겹쳐서 보여주며 카메라를 전환하는 장면은 영화가 조밀하고 치밀하게 얽혀 있음을 나타내지만, 관객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연출이기도 하죠. 그래서일까요? 안개를 모티프로 하는 이 영화에서는 청각과 촉각, 후각적 요소가 부각됩니다. 영화는 뼈 소리, 숨소리, 음식을 씹는 소리에서 그 장면을 클로즈업하기도 하고 체취를 통해 서래를 가까이하고자 하는 ‘해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결국 안개에서 헤쳐나가야만 하는 극 중 인물과 관객의 시도는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려는 끊임없는 사투로 이어져요. 마치 앞서 이야기한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나, 혹은 사랑처럼 말이죠.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사랑한다는 말 없이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어요! 특히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박찬욱 감독은 이번에 ‘어른들의 사랑이야기’를 썼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부분은 가치관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ditor’s Comment
사랑이란 무엇인가. 감정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주 오래전부터 고민했지만 그 누구도 답을 내리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는 데에만 집중하고, 어떠한 메시지도 주장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클래식’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때문에 각자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달라질 수 있는 영화죠. 인간은 본디 죽을 때까지도 자기 자신을 모른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누군가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해준과 서래의 비이성적인 모습이 바로 박찬욱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사랑 아닐까요? 영화를 깊이 보고 싶다면 한 번은 해준의 관점에서 한 번은 서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각기 다른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것을 경험할 테니까요! 그리고 혹시 아이폰을 사용하신다면, 시리는 끄고 보세요. 서래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시리가 밝게 인사할지도 모르니까요.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