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비록 나의 연극은 막을 내린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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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시나리오로, 영화를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을 본 적 있으신가요? 웹툰을 드라마로 각색한 작품은요? 아마 여러 작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텐데요.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 발표되면, 인터넷에는 원작과 각색 버전을 비교하는 글들이 올라오곤 합니다. 원작의 매력을 잘 살렸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원작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달라 아쉽다는 평가도 있죠. 그럴 때면 저는 같은 이야기도 감독이나 작가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구현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아요. 이렇듯 각색된 작품을 쓰는 창작자 역시 자신만의 색깔로 원작을 재탄생시키는 것이죠. 특히 연극은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한 연출가들에 의해 꾸준히 새로운 무대에 세워졌어요. 현대 연극의 거장이라 불리며 연극과 연출의 시대 흐름을 이끈 피터 브룩도 그런 연출가들 중 한 명입니다. 올해 7월 3일, 피터 브룩은 향년 97세로 인생의 막을 내렸는데요. 오늘은 그를 애도하며 그가 꿈꿔왔던 연극을 이야기해보려 해요.

 

🔍피터 브룩이 특별한 이유? 

  피터 브룩(Peter Brook, 1925~2022)은 1925년 런던에서 태어났어요. 연극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주 어렸을 때 이미 시작되었는데요. 10세에 부모님을 위해 4시간 분량의 햄릿 인형극을 혼자 연기할 정도였죠. 그리고 1942년 런던 토치 극장에서 첫 작품인 <파우스트>를 연출하며 재능을 알리기 시작했답니다. 이후 브룩은 고전, 희곡, 코미디,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고 1962년, 당대 최고라 불리는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의 감독으로 임명되기까지 하죠. 극단에서 그는 활기차고 의미 있는 극장을 만들기 위한 대안을 끊임없이 모색했어요.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의 수장이라는 자리에 안주하지 않은 것이죠.

  피터 브룩은 생전에  ‘점잖고 가식적인 연극으로는 관객과 진실한 소통을 할 수 없다. 나는 생명력과 새로운 삶과 놀라움을 찾고 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답니다. 브룩의 열정이 느껴지시나요? 그는 자신이 찾은 삶의 모습을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며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선택했어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인간의 삶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현대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극을 재해석하고, 기존에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줬죠. 특히 1970년에 만든 <한여름 밤의 꿈>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연극계의 노장 피터 브룩 ©Getty Images
피터 브룩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연출한 무대 ©RSC(royal shakespeare company) 공식 홈페이지

 

  피터 브룩은 기존의 양식을 거부하고 무대를 과감하게 표현하며, 때로는 변형시키기도 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관습적인 억양, 인용, 강조법 등을 탈피하고 연극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을 중심으로 작품을 철저히 분해한 거예요. 그렇게 브룩이 <한여름 밤의 꿈>에서 포착한 것은 고통을 안겨 줄 수밖에 없는 ‘사랑’이었어요. 이전에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사실적인 무대를 필수로 여겼지만, 브룩은 이를 따르지 않았던 것이죠. 그는 사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관객이 이를 느끼게 하고자 여러 형태의 사랑을 연출했습니다. 과거 셰익스피어가 광대와 시인, 연인 등을 통해 마술적인 요소를 보였다면, 브룩은 여기에 공중 그네, 죽마, 저글링 등을 더했어요. 그리고 이를 잘 보여 주기 위해 무대는 오직 하얀색 정육면체 형태로 둘러싸인 빈 공간으로 만들었죠. 어떠한 무대 표현 없이도 작품의 세계에 관객을 이입시켜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공간이었어요. 관객이 느낀 마술, 기쁨, 축하의 감각은 고전의 탁월한 현대적 해석이었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들, 연극을 보고 이야기 나누자!

  하지만 연극에 대한 피터 브룩의 열정을 펼치기에 당대 영국의 사회 분위기는 꽤나 보수적인 편이었어요. 브룩은 이를 깨달은 후 프랑스로 넘어가 방치된 작은 극장, ‘부프 뒤 노르’를 인수하고 이를 국제 연극 센터로 만들었답니다. 전 세계 사람들과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극장을 찾고 싶었거든요. 그곳에서 브룩은 연극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시작합니다. 가장 간단한 수단만으로 연극적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 그가 시도한 일이었죠.

  브룩은 파리 외곽의 슬럼가,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 버려진 영화관, 사하라 사막 등 공연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공간에 무대를 올렸어요. 배우들 역시도 프랑스, 영국, 미국, 이탈리아, 말리, 나이지리아, 모로코 등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로 구성했고요. 마약 중독자나 정신 질환자를 관객으로 두거나 극 중에 고대 언어를 사용하는 등 연극의 본질을 찾고자 하기도 했죠. 관객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계층에 속해 있느냐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연극을 통해 공통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특히 브룩은 원시시대 연극의 기능인 제의성1)에 주목했는데요. 성스러운 연극으로 제의적 경험을 선사함으로써 관객들이 정서적 일체감과 공동체 의식을 갖기를 희망했기 때문이죠.

1) 과거에는 연극이 제사의 의식 중 하나였는데요. 연극의 기능 중 제의성에 주목했다는 말은 바로 제사를 지내던 의식으로서의 연극에 집중했다는 말이죠!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부프 뒤 노르’ ©Wikipedia

 

  그 결정체가 바로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바탕으로 만든 연극 <마하바라타>예요. 현존하는 가장 긴 서사시인 산스크리트 서사시를 무려 9시간에 달하는 연극으로 각색한 것이죠. 브룩은 문화적인 특수성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음모, 권력, 정치 등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나타내려 했는데요. 사실 <마하바라타>는 이런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도라는 문화의 문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브룩은 자신의 연극이 바른 방법으로 나타난다면 이를 감상하는 관객의 지각을 변화시키는 가능성이 발현될 거라 믿었어요. 현재 <마하바라타>는 20세기 획기적인 연극 작품 중 하나이자 브룩의 연극 인생을 총 집약시킨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답니다. 

 

1987년, <마하바라타> 공연을 셋팅하고 있는 피터브룩 ©Getty images

 

💬Editor’s Comment

“비어있는 어떤 공간도 나는 무대라고 부를 수 있다. 한 남자가 이 텅 빈 공간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그를 지켜보고 있으며, 이것이 연극 행위에 필요한 모든 것이다.” 

  피터 브룩은 연극의 본질에 몰두했어요. “준비가 전부”라는 햄릿의 구절을 자주 인용하던 브룩은 관객이 극장에 기대해야 하는 것과 제작자가 관객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기준을 높였죠. 그는 철저하고 엄격한 창작 과정은 공연에 대한 배우들의 절대적 헌신을 이끌어 내기도 했고, 이러한 열정과 진정성을 본 청중들은 자신의 투자와 관심, 욕망을 가져와야 함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현재의 연극은 어떤가요? 관객의 상상력을 채워가야 하는 무대가 오히려 관객의 상상력과 여백, 삶의 본질을 해치지는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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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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