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다시 만난 작가, 다시 만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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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직접 보고 기억하는 세대인가요? 당시 어린아이였던 저는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광화문 광장에 나가 응원했던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이 폴란드를 상대로 역사적인 첫 승리를 거머쥔 바로 그날, 광화문 한구석에는 망치를 든 거인이 나타납니다. 키 22M에 몸무게는 50톤에 육박하는, 그야말로 거인 같은 조형물이었는데요. 한 손에 망치를 들고 쉴 새 없이 내려치는 듯한 모습 때문에 ‘해머링 맨(Hammering Man)’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죠. 작가인 조나단 브로프스키(Jonathan Borofsky, 1942~)는 유년 시절, 음악가였던 아버지가 들려준 거인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튀니지의 구두 수선공이 망치질하는 모습을 모티브로 이 작품을 만들었어요. 직종을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에 대한 경의와 위로를 담고 있죠. 사실 <해머링 맨>은 1979년 뉴욕을 시작으로 독일, 스위스, 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 설치된 연작이에요. 우리나라의 해머링 맨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해머링 맨이고요. 광화문 근처에서 쭉 살아온 저는 어릴 적 해머링 맨을 처음 본 뒤로 줄곧 ‘망치 아저씨’라 부르곤 했어요. 끊임없이 망치질을 하고, 엄청나게 크다는 점 외에 별다른 특징은 없었지만, 한 어린이의 동심을 자극하기엔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광화문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된 해머링 맨!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 신축을 기념하여 태광그룹이 설치한 해머링 맨은 올해로 20살을 맞았어요. 세계에서 가장 큰 해머링 맨이 우리나라에 설치될 수 있었던 이유, 그러니까 태광그룹이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20년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알아볼까요?

 

조나단 브로프스키, <해머링 맨(Hammering Man)>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누구보다도 예술에 진심인 기업

  태광그룹은 지난 2000년, 국내 최초로 ‘미디어아트 전용 전시 공간’을 표방한 일주아트하우스를 개관했어요. 21세기가 되며 디지털 시대가 열렸으니, 뉴미디어 아트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였죠. 일주아트하우스는 미디어아트 기획 전시뿐만 아니라 독립영화 상영, 신진 작가들을 위한 스튜디오 공간 대여, 미디어 아카이브 기능과 학술 포럼 및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2005년 폐관을 맞을 때까지 국내 예술계를 지원해왔어요.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예술영화관 씨네큐브가 개관한 것도 2000년 말이었고요. 예술영화 진흥을 위해 노력해 온 씨네큐브는 어느새 옆자리의 해머링 맨과 함께 광화문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죠. 태광그룹의 문화예술 사랑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2009년, 태광그룹은 문화예술 대중화를 위해 세화예술문화재단을 설립하는데요. 바로 다음 해인 2010년에는 폐관되었던 일주아트하우스를 현 흥국생명빌딩 3층으로 자리를 옮겨 ‘일주&선화갤러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개관하기까지 합니다. 이 갤러리를 관리하는 세화예술문화재단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고 이선애 여사가 설립한 재단이에요. 갤러리 옆 해머링 맨도 이선애 여사와 이호진 전 회장의 주도로 만들어졌고요. 이 여사는 지난 2015년 별세했으나 ‘모두가 함께 나누고 누릴 수 있는 문화 예술 활동’을 지향한다는 재단의 비전이 그 뜻을 이어받고 있어요.

 

현 세화미술관의 전신 일주&선화갤러리 Ⓒ세화미술관

 

  작품 100점 이상 보유, 분야별 1명 이상의 학예사 등 전문인력 확보, 전시실, 수장고, 작업실, 도서실 등 시설 완비, 화재 및 도난방지시설 완비, 온습도 조절장치 완비. 이 장황한 조건이 다 뭐냐고요? 바로 1종 미술관 등록을 위한 요건이랍니다. 일주&선화갤러리는 지난 2017년, 세화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서울특별시 1종 미술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어요.

  그 사이 해머링 맨은 약 20년 동안 미술관 옆에서 자리를 지켜 어느새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었죠. 그 밖에도 미술관 소장품인 강익중(1960~)의 <아름다운 강산>,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1928~2018)의 <러브>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열린 장소에 상설 전시되고 있어요. 도심 속에서 예술을 공유하고자 하는 세화미술관의 의지가 느껴진달까요? 세화미술관은 개관 이후 국내 작가들의 전시를 지원하며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과 기획전시를 개최해왔는데, 이번에 열린 전시는 좀 특별해요. 세화미술관의 다양한 소장품 중 유명 해외 작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한데 모은 것이거든요. 그래서 전시 이름도 <미지의 걸작(The Unknown Masterpiece)>이랍니다!

 

로버트 인디애나, <러브(LOVE)> Ⓒ세화미술관

 

👀현대미술계의 이단아,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이번 <미지의 걸작> 전시에서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 마크 퀸(Marc Quinn, 1964~), 만 레이(Man Ray, 1890~1976) 등 유명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30여 점을 만나볼 수 있어요. ‘달리’는 좀 친숙한데 나머지 작가들은 조금 낯설죠? 저는 그중에서도 마크 퀸을 조명해 보고 싶어요. 마크 퀸은 자신의 피 4.5L를 뽑아 만든 자화상 <셀프(SELF)> 연작으로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작가예요. 머리 본을 뜬 틀에 피를 채워 얼려서 만든 작품이죠. 현대미술계는 큰 충격을 받았고 야만적이라 혹평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요. 그럼에도 그는 꾸준히 과감한 시도와 아이디어, 놀라운 작업물을 선보인 끝에 평단과 대중 모두로부터 인정받고 있어요. 지난 2020년에는 BLM 시위에 참여한 흑인 여성 ‘젠 리드’의 동상을 만들어 노예 무역상 동상이 있던 자리에 게릴라 설치를 하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행보 때문에 현대미술계의 괴짜, 이단아란 별명이 붙기도 했답니다.

 

마크 퀸(Marc Quinn)의 셀프(Self)
자신의 피를 얼려서 제작한 자화상, <셀프(SELF)> ©Dohny.com
마크 퀸, <노바야 제믈라(Noraya Zemlya)> Ⓒ세화미술관

 

  그렇다면 마크 퀸은 늘 이렇게 파격적인 작품만 만들까요? 사실 그는 바로 위의 작품처럼 일반적인 재료를 사용한 작품도 곧잘 만들어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노바야 제믈라’는 과거 냉전 시대의 구소련 극지방으로 핵 실험을 하던 곳인데요. 방사능과 낮은 기온 때문에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환경이랍니다. 마크 퀸은 이러한 풍경을 역설적으로 표현했어요. 차가운 얼음 위에 꽃과 토마토를 그려낸 거죠. 꽃과 과일이 지나치게 생기 있게 묘사되어 오히려 생명력이 없는 가짜로 보이지 않나요? 자연적으로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 만나 역설을 이루니, 삶과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셀프> 연작도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생명에 대한 작가 개인의 고찰을 담은 작품이에요. 중요한 건 작품을 얼려서 만들었기에 녹지 않도록 보관하려면 냉동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점인데요. 누군가의 도움으로 냉동을 유지할 수 없다면 작품은 녹아 없어져 핏물로 전락해버려요.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타인과 상호 의존해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 똑 닮았네요. 피로 만든 두상이든, 손으로 그린 유화이든 명확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면 무엇이 더 아름답고 현대미술에 어울리는 작품인지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절대적인 기준 따위는 없으니까요. 이 전시에는 이처럼 작품에 내재된 의미와 메시지를 곱씹어보며 작가의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 여럿 있어요.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전시를 감상하며 이들의 예술 세계에 흠뻑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의 모습

  한편 작가의 초기작 혹은 익숙하지 않은 화풍으로 그려진 작품도 볼 수 있었어요. 줄리안 오피는 ‘검은색 선’으로 사물과 배경의 윤곽을 나타내고 명암을 생략해 디테일을 최소화하는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국내에서는 서울스퀘어 외벽에 걸렸던 <걷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고요. 그런데 다음 작품에선 그를 상징하는 검은 선과 강렬한 원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요. 평소 그의 작품을 봐오던 이로서는 다소 ‘심심하다’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지금은 사람과 동물을 주요 소재로 삼아 고유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그지만, 이전에는 검은 선 하나 없이 미니멀한 풍경화를 그렸던 거예요. 디지털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줄리안 오피는 자연스레 자신의 관심사를 인물로 옮겼고, 검은색 선과 강렬한 색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만약 이런 변화가 없었다면 줄리안 오피의 작품 세계 전반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 몰라요. 그가 현대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한국에서의 위상도 말이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작가의 이미지와 스타일은 결국 ‘현재의 시점에 다양한 매체로부터 학습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거리를 던져주네요. 작가의 스타일이란, 곧 작품이 유명해져야만 대중에게 각인되는 거니까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들과 함께 전시를 감상하면 분명히 더 알차고 흥미로운 경험이 될 거라 믿어요.

 

줄리안 오피, <나는 운전하는 꿈을 꾸었다. (마을).(I dreamt I was driving my car. (village).)> Ⓒjulianopie.com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걷고 걷는 사람들… 얼굴 대신 발걸음으로 표정 읽어요 - 프리미엄조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줄리안 오피의 작품, 서울스퀘어 미디어 캔버스 <군중> ©조선멤버스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다양한 작가의 생소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 외부부터 입구, 건물 내부 곳곳에 다양한 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어 즐길 거리가 많아요.

- 차분한 전시 분위기와 함께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되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어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작품 수가 조금 더 많았으면 좋았겠어요. 작가마다 1~2점의 작품만 만나볼 수 있어서 살짝 아쉬웠어요.

- 다소 덜 알려진 작품들인데 오디오 가이드와 팜플렛 설명도 부족했어요. 더 많은 정보는 포털에 검색해봅시다!

 

💬Editor’s Comment

  미술 작품을 공공장소에 전시하며 많은 대중이 누리게끔 하는 기업의 정책은, 미술을 즐기는 한 개인인 제게는 좋은 방향으로 느껴졌어요. 그것이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방법이든 창업자의 진심이 담긴 ‘전언(前言)’이든 말이죠. 그 덕에 어렸을 적 망치 아저씨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소년은 예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청년으로 자랐고요. 이번 주말엔 세화미술관에서 전시를 감상하고 씨네큐브에서 영화까지 보면 어떨까요? 아, 마크 퀸의 셀프 연작 중 하나는 여전히 녹지 않은 채로 종로구 아라리오뮤지엄에 보관되어 있어요. 세화미술관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까, 아예 광화문 미술관 투어도 좋을 것 같은데요?


 

 

ㅇ참고자료
- 고충헌, “사라지는 미술관”, 월간 문화예술, 2001
- 변종필, <아트톡톡> 예술과 비예술②-현대미술에서 사용된 표현재료의 무제한성, 서울아트가이드,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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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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