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샤갈, 사랑의 화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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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나요? 이건 질문을 던진 제게도 정말 어려운 고민거리예요. <블랙 위도우>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일부일처제는 존경스럽지만, 본능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이 이야기를 듣고 아담 드라이버와 명연기를 펼쳤던 <결혼 이야기>의 부부싸움 장면을 보면 한층 더 섬뜩해집니다. 사랑의 영원성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기도 하죠. 반면 그 누구보다도 절절히, 한 사람을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을 표현해 온 화가가 있어요. 바로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입니다.

 

🦶여기저기 떠도는 이방인의 삶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19세기 말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9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어요. 그 무렵의 유대인 대부분이 그러했듯 샤갈은 한평생을 국제 정세와 개인 사정에 따라 여러 나라를 오가며 살았어요. 유대인을 비롯해 이렇듯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하는데, 샤갈의 삶은 그야말로 이 단어가 의미하는 이방인 그 자체였습니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주인공처럼 역마살이 끼었다고나 할까요. 고국 러시아에서 자행되었던 유대인 차별과 공격으로부터 언젠가는 떠나야만 했죠. 1910년, 처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을 때 그는 유대교식 이름 ‘모이세 샤갈’ 대신 지금의 ‘마르크 샤갈’을 쓰게 돼요. 비록 떠도는 입장이지만, 머무르는 동안만큼은 프랑스 문화에 적극적으로 녹아들겠다는 의미였답니다. 

 

전쟁도, 혁명도, 히틀러도 &#039;사랑의 화가&#039; 샤갈을 꺾지 못했다 - 매경프리미엄
1920년의 마르크 샤갈 ⓒ위키피디아 

 

  하지만 샤갈은 러시아에 남아 있는 약혼자 벨라 로젠펠드(Bella Rosenfeld, 1895~1944)를 내내 그리워했기에 4년 만에 귀국을 결정해요. 네, 샤갈의 작품에 다수 등장하며 우리에게는 평생의 사랑으로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요! 그러나 불과 귀국 몇 주 만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말죠. 몇 년 후에는 볼셰비키 혁명1)까지 일어났고요. 신변에 위협을 느낀 샤갈은 벨라와 함께 고국을 탈출했어요. 두 사람은 떠돌이 생활을 전전하다 파리에 정착하는데요. 샤갈은 파리에서 벨라, 그리고 딸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벨라 샤갈.jpg
1926년 파리의 작업실에서 아내 벨라를 그리고 있는 마르크 샤갈 ©Sothebys.com
사랑꾼 화가의 조금 특별한 그림 이야기
결혼의 행복을 드러낸 <에펠탑의 신랑 신부> ©CONTEENEW

 

  하지만 기쁨도 잠시, 독일 총리에 부임한 히틀러가 사상 최대의 유대인 탄압을 시작했어요. 청년 시절의 샤갈이 사랑, 따뜻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주로 그렸다면, 이 시기쯤부터는 유대인이 겪는 수모와 차별을 주로 그렸죠. 이후 샤갈은 미국으로 망명에 겨우 성공했으나, 화가로서 이전만큼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는 못했답니다. 아내 벨라가 간염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거든요. 샤갈은 충격으로 그림을 한동안 그리지 않다가,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며 재기에 성공해요. 그리고 전쟁이 끝나 프랑스로 돌아온 샤갈은 벨라와 보냈던 시간을 아름답게 담은 작품들을 그리며, 눈을 감을 때까지 오로지 그녀에 대한 순애보를 지키며 살았을···까요?

1) 볼셰비키 혁명은 10월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혁명이에요. 러시아 2월 혁명에 이은 두 번째 단계인데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서 레닌이 인솔했던 급진적 공산주의 정당, 볼셰비키가 이루어 낸 혁명이었으며 이를 통해 당시의 임시정부가 쓰러지고 이후 공산주의 국가 소련이 탄생하죠.

 

💘벨라, 하나 뿐인 사랑! (아님)

  놀랍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샤갈은 벨라와 사별 후 27살 연하의 버지니아 맥닐(Virginia Mcneil, 1915~2006)이라는 여성과 만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이를 연결해준 건 벨라와 낳은 딸 아이다였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외롭게 지내던 아버지를 위해 언어가 통하는 가정부를 알선해주었던 거예요. 샤갈과 버지니아는 자연스레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문제는 그녀가 이미 딸이 있던 유부녀였다는 거죠! 한마디로 버지니아에게 샤갈은 내연남이었고 샤갈과 그녀의 관계는 엄연히 불륜이었어요. 둘 사이에서 아들까지 태어났지만 끝내 결혼하진 않았고, 버지니아는 아들을 데리고 샤갈의 곁을 떠났답니다.

  아이다는 또 한 번 아버지를 위해 가정부를 고용해요. 바로 샤갈과 같은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여성 발렌티나 브로드스키(Valentina Brodsky, 1905~1993), 우리에게 ‘바바’로 알려진 인물이죠. 샤갈은 바바와 2번째 결혼식을 올렸고,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했어요. 바바는 벨라처럼 샤갈의 뮤즈가 되거나 엄청난 영감을 주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의 사업을 대신 관리하며 샤갈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벨라와의 사랑을 통해 로맨티시스트로 알려진 샤갈에게 불륜과 재혼 경력이 있다니, 놀라운 반전이죠?

 

샤갈과 버지니아 맥닐 ⓒWikipedia

 

  영화 <노팅힐>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휴 그랜트의 집에 걸려 있는 샤갈의 작품 <신부>를 보고 “사랑을 제대로 정의한 작품 같다”며 감상을 표현해요. 이 그림은 샤갈이 새로운 연인 버지니아와 만나던 시기에 그려졌는데요. 샤갈은 버지니아와 만나면서도 벨라에 대한 그리움을 작품 속에 스스럼없이 녹여냈습니다. <신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림 속 신부가 바로 벨라였거든요. 버지니아 입장에서는 연인이 전 연인을 작품에 신부의 모습으로 그려 넣은 게 되고요. 심지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 공평하게 경쟁할 수도 없는데 말이에요. 샤갈은 벨라를 떠나보내고 꾸준히 다른 이성을 만났지만, 그에게 있어 사랑과 행복은 곧 ‘벨라와 함께 보낸 시간’이었어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샤갈이 여러 사랑을 거쳤음에도 우리는 그를 지고지순한 해바라기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벨라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작품 <신부> ⓒWikipedia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성서화

내가 유대인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샤갈은 디아스포라로서의 삶을 보내던 1931년 무렵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어요. 그 무렵 의뢰를 받아 처음 성서화를 그린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성서와 관련된 작품을 만들었죠. 그는 성서 속 인물들과 주요 사건을 유화뿐 아니라 석판화, 태피스트리 등 여러 방식으로 제작했어요. 전통적인 종교회화의 전형성을 탈피해 그의 상징인 수탉, 염소를 넣는 등 자유롭게 재해석했답니다.

  평생 샤갈이 그린 성서화는 무려 수백 점이 넘어요. 성서에 대한 샤갈의 헌정은 그가 유대인이란 점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죠. 고향 러시아를 떠나 전 세계를 유랑하던 그에게 ‘예루살렘에서 성서화를 그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특별하지 않았을까요? 샤갈의 성서화는 따뜻한 느낌이 드는 그의 작품 분위기와 사뭇 달라요. 다소 어두운 느낌이죠. 유대인으로서 겪은 수모와 그로 인한 상처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인데요. 샤갈은 고통받았던 유대인 공동체의 모습을 작품에 담아 그들을 위로했어요. 이는 곧 샤갈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했고요. 그는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에도 여러 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해 전시회를 열고 성경책에 삽화를 그렸으며,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도 참여했어요. 샤갈은 만 90세가 되던 해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는데,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유대인으로서 과거의 상처를 잊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 표명이었을 겁니다.

  샤갈의 유작 <또 다른 빛을 향하여>에는 연인의 모습을 그리는 화가가 그려져 있어요. 그가 생애 마지막까지 사랑에 대한 열렬한 경애를 놓지 않았음을 알 수 있죠.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화가의 머리 위 천사가 마치 그를 천국으로 데려가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분명 다시 태어나도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사랑하는 벨라를 위해 그림을 그리겠다고 맹세했을 것 같네요.

 

고통을 감내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그린 <강기슭에서의 부활> ⓒMarc Chagall

 

마르크 샤갈의 유작 <또 다른 빛을 향하여> ⓒMarc Chagall

 

✨샤갈, 시적인 화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샤갈은 시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그는 초창기부터 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1895~1952),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 등과 교류하며 지냈죠. 특히 당대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던 엘뤼아르와는 사이가 돈독했는데, 샤갈은 그의 시집에 삽화를 그려주었고 엘뤼아르는 <마르크 샤갈에게>라는 헌정시를 지어줄 정도였답니다. 일찍이 엘뤼아르는 샤갈에게 초현실주의 진영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지만, 샤갈은 이를 거절했어요. 이후에도 샤갈은 생애 내내 초현실주의 화가로 분류되기를 완고하게 거부했죠. 자신의 그림은 모두 “꿈이나 환상이 아닌 실제 추억을 그린 것”이라면서요. 보통 샤갈은 초현실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본인은 특정 미술 유파에 가담하지 않고 자유로운 활동을 했다는 게 흥미롭지 않나요?

  한편 우리나라에도 샤갈의 영향을 받은 아주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에요. 샤갈의 <나와 마을>을 보고 영감을 얻어 쓴 시로 알려져 있는데, 실 김춘수 시인이 봤던 작품은 눈으로 덮인 고향 마을의 전경을 그린 <비테프스크 위에서>라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김춘수의 시는 “샤갈의 마을에서는 3월에 눈이 온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나와 마을>이 보여주는 풍경은 그다지 눈이 내리는 것 같지 않거든요. <나와 마을>, <농부의 삶>에는 모두 동물이 그려져 있어요. 각각 염소와 당나귀입니다. 수탉, 소, 말 등의 동물은 샤갈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소재인데요. 눈이 내리고 당나귀가 등장하며 연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시가 떠오르지 않나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말이에요. ‘나타샤’가 샤갈의 고국 러시아에서 흔한 여자 이름이라는 점까지 샤갈의 작품에 들어맞아요. “세상을 버리고 산골로 가자”는 내용이 반복되는 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녔던 샤갈의 인생을 생각나게 하고요. 백석은 김춘수와 달리 작품과 관련해 샤갈을 언급한 적이 없지만, 왠지 두 작품에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샤갈에게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가져다 준 작품 <나와 마을> ⓒWikipedia

 

Marc Chagall | Peasant Life. (La vie paysanne) (1925) | MutualArt
시골생활의 정취를 그려낸 <농부의 삶> ⓒBuffalo AKG Art Museum

 

  샤갈은 근현대사의 참혹한 순간들을 정면으로 부딪히며 지나왔어요. 유대인으로 태어나 온갖 차별과 탄압을 견뎌야만 했고, 나치로부터 도망쳐야 했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었죠. 그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그는 언제나 이방인이었고요. 그렇게 의지할 데 없는 세상에서 연인 벨라는 작품을 계속 그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영감이었어요. 그래서 그 위대한 사랑의 힘과 의미에 더욱 집착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제가 이야기하지 않은 샤갈의 연애사가 하나 있어요. 사실 샤갈은 벨라를 만나기 전 유대인 여성 테아와 사귀고 있었답니다. 샤갈은 테아의 집에서 그의 친구 벨라 로젠벨드를 처음 만났고,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게 된 거죠.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던 거예요! 이런 평생의 사랑조차 내용을 들여다보면 썩 아름답고 순수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벨라를 향한 샤갈의 사랑은 분명 완전무결한 진심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오기도 하고요. 어때요? 여러분은 샤갈이 사랑의 화가로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여전히 그가 그려 낸 사랑의 색채가 아름답고 위대해 보여요. 여담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샤갈의 작품은 <농부의 삶>인데요, 샤갈에게 제2의 고향이었던 프랑스의 삼색기 속 빨강, 파랑, 하양이 잘 드러나죠?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그리든, 진실한 애정을 표현하려는 화가였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어요.

 

 

 

ㅇ참고자료
- 강미화, 샤갈(Chagall) 작품에 나타난 무의식의 상징에 관한 연구, 예술심리치료연구, 7(4), 75-103., 2011.
- 김기숙, 샤갈(Marc Chagall)의 그림 속에 투영된 종교성이 기독교교육에 주는 함의, 기독교교육정보, 60, 63-9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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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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