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나 8등신은 맞는데... 허리가 많이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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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신체의 비율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각종 매체에서도 몸매 비율이 좋은 사람들을 8등신 미남미녀라고 소개하곤 하죠. 그런데 만약, 얼굴이 작아 8등신은 맞는데 허리가 아주 길고, 팔이 축 늘어져 있다면 어떨까요? 여기, 해부학적 구조를 무시하고 미술 역사상 가장 기묘하고 관능적인 여성 누드화를 그린 인물이 있습니다. 동양적인 배경에 푹 빠졌던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를 알아볼게요.

 

😤스승님, 하산하겠습니다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를 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는 1780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왕립 미술원에서 데생을 배웠어요. 17세에는 파리에서 신고전주의의 위대한 화가로 알려진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 밑에서 공부했죠. 그리고 5년 뒤, 몹시 갈망하던 로마상을 수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폴레옹의 초상화 제작을 주문받는 등 명성을 얻기 시작했어요. 이후 그는 소형 초상화가로도 유명해지는데요. 그때 그린 초상화들이 그의 작품들 중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작품들이랍니다.

  활동 초기에는 스승인 다비드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고전시대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 점점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적인 징후를 보입니다. 스승인 다비드는 고대의 영웅적인 주제나 윤리를 강조한 역사화를 주로 그렸는데요. 그래서 다비드의 그림에서는 힘차고 역동적이며 권위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조화와 질서를 존중하는 고전적인 형식미를 확인할 수 있죠. 반면 앵그르는 부드럽고 화려한 그림을 그렸어요. 고전주의 형식의 이상적인 비례와는 거리가 먼 왜곡된 그림이었죠. 아래 그림을 통해 다비드와 앵그르의 그림을 비교해보면, 이와 같은 차이를 단번에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다비드, <호라티우스의 맹세(1784)> ⓒGoogle Arts&Culture
앵그르, <샘(1856) > ⓒGoogle Arts&Culture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동양 너무 좋아

  앵그르는 1806년부터 14년 동안 로마에 거주해요. 이때 앵그르가 그린 최초의 여성 누드화이자 ‘발팽송의 욕녀’로 잘 알려진 <목욕하는 여인(1808)>과 <그랑드 오달리스크(1814)>가 탄생하죠. 이 두 작품에 들어간 동양풍의 취향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데요. 사실 그가 상상하고 표현했던 동양은 실제와 꽤나 거리가 있었답니다.

  ‘오달리스크’는 오스만 제국에서 노예 하녀나, 술탄의 아내들에게 딸린 시녀를 일컫는 ‘오달릭’을 프랑스식으로 읽은 말이에요. 사실 그들은 후궁들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었어요. 하지만 이슬람 세계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펼쳤던 19세기 유럽인들의 환상 속에서 그 의미가 퇴색되었답니다. 유럽인들에게 오달릭은 이슬람의 제왕인 술탄의 쾌락을 위해 봉사하는 아름다운 여자 노예였어요. 문화권을 건너오며 발음만 달라진 게 아니라 의미 또한 달라졌던 것이죠. 이에 앵그르는 유럽인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오스만 제국 근처에도 가 본 적 없지만, 동양 세계에 막연한 매력을 느꼈어요.

 

<그랑드 오달리스크(1814)> ⓒWikimedia

 

  앵그르에게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주문한 건 나폴레옹 1세의 셋째 여동생이었어요. 앵그르는 스승 다비드의 <레카미에 부인>에서 영감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는데요. 작품을 선보인 전시회에서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어요. 그림에 긍정적인 사람들은 사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재질에 따른 느낌의 차이를 거의 완벽하게 묘사했다며 손뼉 쳤어요. 짙푸른 색의 커튼과 공작의 깃털, 진주로 장식된 버클이 달린 벨트, 벨벳 소재의 침구 등은 마치 직접 만지는 듯한 착각까지 자아냈죠.

  반면 그림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비평가들은 신체의 해부학적 특징에 주목했어요. 여인의 긴 허리를 가리켜, 일반인보다 척추뼈를 3개나 더 가지고 있다고 비아냥거렸고, 곡선을 이루는 몸에는 뼈나 근육도 없다며 비난했답니다. 실제로 오른쪽 팔은 마치 팔꿈치가 없는 듯 보이고, 팔 자체의 길이도 상당히 길어요. 우리의 몸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다른 모습이죠.
 

다비드, <레카미에 부인(1800)> ©알고가자 프랑스

 

  앵그르는 일부러 형태를 왜곡하는 기법인 데포르마숑(Deformation)을 즐겨 사용했어요. 이 기법을 사용한 건 그저 여인의 육체가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특징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 <터키탕(1862)>에서도 확인할 수 있답니다. 이 작품은 노년의 앵그르가 터키 주재의 영국 대사 부인이 쓴 <터키탕의 견문기>를 읽고 영감을 얻어 제작한 거예요. 여성의 누드를 표현할 때 흔히 차용되던 신화의 주제를 버리고, 오직 상상을 통해 하렘 여자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죠.

  이 그림에서도 여성의 몸이 비현실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허리와 팔이 너무 길어서 기묘한 분위기까지 자아내요. 이 작품은 원래 사각형 캔버스에 제작되었다가 이후 원형 캔버스에 다시 그려졌어요. 원형 캔버스는 마치 열쇠 구멍으로 목욕탕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인데요.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출인 것이죠. 이러한 구성 때문에 그에게는 관음증과 관련된 구설들이 따라다녔답니다. 앵그르는 이외에도 오달리스크를 주제로 다양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앵그르와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린 화가가 또 있답니다. 어떤 화가였을지, 앵그르와 달리 어떻게 오달리스크들을 표현했을지 한번 살펴볼까요?

 

<터키탕(1862)>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

 

😮같은 시대 다른 느낌

  그는 바로 역시 프랑스의 화가였던 외젠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 1798-1863)였어요. 앵그르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지만,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 화가로 불리죠. 앵그르는 신고전주의의 마지막 대표 주자였고,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연 화가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19세기 프랑스는 전통에서 모던으로 전이되는 격변의 현장이었어요. 전통을 고수하는 신고전주의와 그에 반항한 낭만주의가 대립을 이루었답니다.

  두 화가는 동시대를 살면서 서로 다른 회화 양식을 추구했고, 서로를 엄청 싫어했어요. 들라크루아는 동료 화가들과 함께 앵그르의 정확한 선묘와 데생을 비난했죠. 혁신 성향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는데요. 반대로 앵그르는 들라크루아가 극적인 명암과 색채를 강조해 그림을 그린 것을 비판했어요.

 

파일:Eugène Delacroix - Odalisque - WGA6225.jpg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들라크루아, <오달리스크(1857)> ©Wikipedia

 

  어떤가요? 앵그르의 그림과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겠죠? 들라크루아는 대담한 색채 대비로 유명한 화가예요. 윤곽선을 허무는 지저분한 붓질로 ‘회화의 학살자’라는 악명까지 얻는 등 개성이 뚜렷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에는 진한 감정이 녹아 있는 듯 보여요. 앵그르의 그림과 달리 낭만적인 느낌을 주죠. 그래서 들라크루아 역시 하렘의 여인들을 그렸으나, 앵그르의 작품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랍니다. 같은 시대인데도 화풍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감상자에게는 즐거운 볼거리네요.

 

🙄현대미술의 시작, 앵그르?

  앵그르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 미술 양식과 정신을 본받아 균형과 명확한 표현을 중시했습니다. 또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두 화풍 사이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지키려고 노력했죠. 결국 조화를 꾀하기 어려운 신고전주의 전통을 바탕으로 변화를 추구해 두 가지 상충된 덕목을 구현해낸 거예요. 이는 후대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어요. 마티스, 피카소로 이어지는 현대미술의 출발점을 제시한 인물이라 소개할 수 있을 정도로 앵그르는 오늘날 현대미술의 계보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화가랍니다.

 

앙리 마티스, <오달리스크(1925)> ©Google Arts&Culture

 

 앵그르는 스승인 다비드의 고전주의 특징을 따라가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성을 조화롭게 표현하고자 했어요. 고전주의의 보존자 역할을 하는 동시에 낭만주의가 들어서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죠. 어쩌면 19세기 프랑스가 가지고 있던 갖가지 화풍을 가장 잘 표현한 화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두 화풍이 섞인 앵그르의 그림을,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ㅇ참고자료
- 넬리 브뤼넬 레날,『논술세대가 알아야 할 서양미술사』, 지엔씨 미디어, 2007.
- 우정아, “[우정아의 아트스토리] [294] 서구인 환상 속 술탄의 여자 노예”, 조선일보,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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