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곡 아는 사람 특 : 집에 삼성 세탁기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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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은 자연물이나 인물, 또는 사물에 빗댄 제목을 짓고 그 내용을 선율로 담는 경우가 많아요. <마왕>, <겨울 나그네>, <방랑자>처럼요. 특히 낭만주의 시대에는 이처럼 제목만으로도 곡의 분위기가 연상되는 가곡들이 다수 등장했고, 그 인기도 상당했죠. 그중에서도 가곡으로 이름을 날렸던 작곡가가 있습니다. 바로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예요. 오늘은 그가 남긴 명곡들 중 가장 사랑받고 있는 곡을 조명하려고 해요. 아마 빨래할 때 자주 들었던 익숙한 음악일 거예요. 갑자기 빨래가 왜 나오나고요? 세탁기가 다 돌아갔을 때 나오는 종료음 멜로디가 바로 오늘 다룰 음악이거든요. 숭어인지 송어인지 헷갈리는 이 명곡! 한번 파헤쳐 볼게요.
👍닉값 한번 씨게 하는 가곡의 왕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음악의 어머니는 헨델 그리고 슈베르트는..? 바로 “가곡의 왕”이라고 불리는 작곡가죠. 여기서 잠깐! 가곡이 무엇이냐고요? 가곡이란 문학적인 시에 음악이 합쳐진 형태의 성악곡을 말하는데요. 넓게 보면 단순히 악기로 반주를 넣은 성악곡이지만, 슈베르트가 살았던 시대에는 특히 문학 작품에 멜로디를 삽입한 좀 더 고급적인 개념의 예술가곡을 뜻해요. 슈베르트는 당시 유명했던 시인의 시를 가사로 많이 차용했어요. 그가 작곡한 곡 998개 중 630여 곡이 가곡인데, 괴테의 시를 가사로 쓴 곡이 무려 70여 곡 정도 되죠.
슈베르트는 가난한 집안에서 16명의 형제들에게 치이며 살았어요. 음악적인 재능은 있었지만, 다른 작곡가들처럼 전문적인 음악 공부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형식적으로 탄탄하게 짜인 곡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심지어 대규모 작품을 쓸 때는 곡을 전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기도 하고, 화려한 기교나 복잡한 전개 구조가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라 일부 평론가들은 슈베르트 작품을 폄하했다고도 해요.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그 대신! 오늘날 슈베르트 음악이라고 하면 가지는 확실한 특징이 있죠. ‘서정성이 풍부한 아름다운 선율의 전개’는 슈베르트 음악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랑, 기쁨, 슬픔 같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들을 표현한 낭만주의 서정성에 매료되어 있던 슈베르트. 그의 가곡에서는 성악가가 부르는 핵심적인 선율이 가사의 표현을 이루고 있어요. 이에 더해 악기 반주가 단순히 노래를 받쳐주는 데에서 벗어나 가사의 분위기를 조성해주죠. 반주자가 시 해석가의 역할까지 같이 하게 되는 거예요. 이 시기에는 보통 피아노가 노래 반주 악기로 사용되었는데요. 동시에 피아노 반주가 발전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피아노 특유의 섬세하고 풍부한 음색으로 성악과 하모니를 맞출 수 있었답니다. 한마디로 가곡에서 피아노의 역할이 커졌다는 의미예요. 원래의 가곡 반주가 성악가의 목소리를 뒷받침해주는 정도였다면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성악가의 목소리를 보강하거나 가사의 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가사의 의미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죠. 선율, 화성, 템포, 형식 등 음악의 모든 요소가 시의 내용과 밀착되어 시적 정서의 미묘한 변화들을 보여주는 것이 슈베르트 가곡만의 특징이랍니다. 가곡의 위상 또한 슈베르트를 기점으로 높아졌어요. 슈베르트 이전 주목받지 못했던 독일 가곡들은 민요풍의 노래였는데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노래할 수 있을 만큼 단순했으나 음악적으로 위상이 높지는 않았죠. 음악과 시를 결합하려는 슈베르트의 시도가 있었기에 예술가곡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거예요.

🌙슈베르트의 대표곡을 탄생시킨 슈베르트의 밤
슈베르트는 가곡을 처음 출판하던 해에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슈베르트의 밤’이라는 뜻을 가진 이 모임은 빈 문화계에 영향력이 있었던 시인과 화가, 음악가 및 성악가들이 음악적 교류를 나누는 장이었는데요. 슈베르트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고 슈베르트가 작곡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었던 고마운 인물들로 구성되었답니다. 여기에서 슈베르트는 후에 상당한 절친이 되는 바리톤 가수 미하엘 포글(Johann Michael Vogl, 1768~1840)을 만나게 돼요.

1817년 슈베르트는 포글을 위해 슈바르트(오타 아니고요. 슈베르트 아니고요… 비슷한 이름을 가진 시인이에요(Christian Friedrich Daniel Schubart, 1739~1791)의 시를 가사로 하여 노래를 한 곡 만들어요. 이때 만들어진 곡이 가곡 <송어>예요. 대체 이 유명한 곡의 내용이 무엇이냐고요? 이 곡은 정말로 송어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곡인데요. 가곡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아요. 어떤 사람이 맑은 시내에서 헤엄치는 송어를 보고 있었고, 한 어부가 그 송어를 잡으려고 했으나 물이 너무 맑아서 송어가 잡히지 않았어요. 어부는 물을 어지럽혀 헤엄을 방해했고, 그렇게 송어를 잡았죠. 그 광경을 보고 있었던 사람은 어부의 속임수에 걸려든 송어를 당황스럽게 바라보았고요.
슈베르트는 22살이 되던 해에 포글과 함께 북오스트리아로 여름휴가를 떠나는데요. 이곳에서 파움가르트너라는 광산업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침 이 광산업자는 관악기와 첼로 등 악기를 다룰 수 있었던 음악 애호가였고, 슈베르트에게 본인이 직접 연주에 참여할 수 있는 곡을 작곡해달라고 했어요. 이때 파움가르트너는 평소 본인이 좋아했던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의 멜로디를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죠. 이렇게 해서 실내악곡인 피아노 5중주용 송어가 탄생하게 되었어요. 악기의 반주와 사람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가곡에서 피아노를 포함해 여러 악기가 함께 합주하는 실내악곡으로 변신한 것이죠!
🤗송어, 가곡ver. 과 실내악곡ver.
가곡 송어는 총 3절로 구성되어 있어요. 1절은 송어가 활발하게 헤엄치는 모습, 2절은 낚시꾼이 송어를 노리고 있는 모습, 3절은 이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화자의 마음을 노래하는 내용이죠. 이 곡은 슈베르티아데에서 포글에 의해 초연되었어요. 보통 독일어로 된 가사의 노래는 발음이 대체로 딱딱해서 듣기 힘들 수도 있는데, 슈베르트의 가곡은 이상하게도 부드럽게 들려요. 피아노 반주가 시내에 흐르는 물을 표현하듯 매우 유려하게 흘러가는데 이 멜로디가 노래를 돋보이게 해 주거든요. 슈베르트의 기지가 돋보이는 부분이에요.
피아노 5중주로 연주하는 송어는 총 다섯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송어의 멜로디를 주제로 한 곡은 4악장이고요. 그래서 이 5중주에도 <송어>라는 곡 제목이 붙게 된 것이랍니다. 원래 피아노 5중주는 피아노, 바이올린 둘, 첼로, 비올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하지만 송어 5중주는 바이올린 하나 대신 더블베이스가 들어가 있죠. 피아노 5중주 자체도 많이 연주하지 않는 특별한 구성이기 때문에 더블베이스까지 추가된 송어는 더욱 특별한 곡으로 여겨집니다. 이 더블베이스의 소리가 한층 더 낮은 깊이감을 줘서 폭넓은 음향과 풍부한 분위기를 자아내죠.
가곡 송어의 멜로디가 삽입된 4악장은 전체 6개의 변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송어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바이올린의 주제 선율로 시작해서 다음에는 피아노로 옮겨가고, 뒤이어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듀엣이 연주돼요. 5개의 모든 악기가 앙상블을 이루며 연주하는 모습은 신나고 당차게 헤엄치는 송어의 모습을 연상케 하죠. 후반부의 격정적인 부분에서는 결국 송어가 어부에게 잡히는 모습이 절로 떠오르고요.
🧺세탁기와 함께 연주를
슈베르트의 5중주 송어는 앙상블팀이 연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 중 하나예요. 유튜브에는 이 곡을 연주한 아티스트들의 영상이 넘쳐나죠. 그런데 조금 특별한 연주 영상이 있으니, 바로 세탁기와의 협연입니다. 아니, 세탁기랑 무슨 연주를 하냐고요…? 기억을 잘 더듬어보세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슈베르트의 <송어>는 우리에게 세탁 종료 멜로디로 더욱 익숙하니까요. 이 세탁 종료 멜로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는데요. 세탁이 완료되고 나면 그저 비프음이 들리는 다른 세탁기들과는 달리 빨래를 마친 뒤 느끼는 기분과 잘 어우러지는 경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것이 큰 인기 비결이었죠. 또 다른 한류 상품의 등장이라는 기사까지 등장했답니다. 그리고 삼성 세탁기에서 나오는 <송어> 멜로디와 협주하는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슈베르트의 대표작 <송어>가 최근까지도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하다니 재미있는 일이죠? 혹시 리코더를 연주할 줄 아시나요? 피아노는요? 집에 어떤 악기라도 있다면 오늘 세탁기와 함께 연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층 더 색다르고 신선한 음악으로 느껴질 거예요!
민물에 사는 물고기는 송어,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숭어! 우리나라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슈베르트의 송어를 숭어로 표기했을 정도로 이를 혼동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요. 슈베르트가 표현하고자 했던 물고기는 깨끗한 민물에서 당차고 유려하게 헤엄치는 ‘송어’ 임을 꼭 기억해주세요!
ㅇ참고자료
- 곽민정, “슈베르트 가곡과 실내악곡 비교 분석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2017.
- 이동활, 『청소년을 위한 서양음악사』, 두리미디어.
- 민은기, 『서양음악사2』, 음악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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