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마다 그림 그리던 세관원이 피카소에게 인정 받은 화가까지 된 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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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꿈보다는 현실에 기반을 둔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눈앞의 현실을 무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 선택으로 인해 나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면 더더욱 그렇고요. 그렇게 현실을 택하고 나면, 마음속에는 꿈에 대한 짙은 아쉬움이 남게 돼요. 이 아쉬움을 달래는 여러분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혹은 시간이 지난 후에 포기했던 꿈에 다시 도전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 어떤 용기도 내지 못하고 미련을 품고 있다면, 이 화가에게 주목해 주세요!
😮평범한 세관원이 일요화가가 된 건에 대하여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는 그림을 좋아하는 소년이었어요. 재능도 어느 정도 있어 학교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루소의 가정 형편은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원래도 그리 부유하지 않았는데, 20대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까지 해 그는 일찍부터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죠. 정식적인 미술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고요. 이렇게 꿈을 버리고 현실을 택하게 된 루소에 마음속엔 미술에 대한 아쉬움과 열등감, 성공하겠다는 욕구가 자리 잡게 됩니다.
이후 루소는 파리에서 세관원으로 일하기 시작해요. 통행료를 걷는 간단한 업무였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편이었죠. 그래서 일을 하지 않는 일요일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어요. 예상이 되시나요? 네, 루소는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렸어요. 그가 ‘일요화가’라고 불리게 된 이유죠.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린 루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꾸준히 실력을 연마한 덕분에 비평가와 대중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유명 화가가 되었을까요? 안타깝지만 그의 별명은 오랫동안 세관원이라는 의미의 ‘두아니에(Le Douanier)’였어요. 누구도 화가로서 그의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은 것이죠. 그럼에도 루소는 자연을 보고,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니면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요. 이렇게 미술을 독학하는 것을 ‘나이브 아트(naive art)’라고 하는데요. 특별한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채로 자신만의 미술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해요.

🙄소박한 화가의 소박하고 이상한 그림
그렇게 혼자만의 미술 세계를 쌓아오던 루소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찾아옵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꾸준히 다녔던 루소는 1884년 마침내 정식으로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허가증을 받아요. 이듬해에는 살롱 드 샹젤리제에 작품을 출품하며 화가로서 데뷔하고요. 1886년에는 프랑스의 독립 미술가들이 모여 개최되는 전시 ‘앙데팡당전(Indépendants展)'에 <카니발의 저녁>을 출품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습니다.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말이죠. 부정적인 평이 오갔던 데에는 루소의 그림에 당시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루소의 그림을 한번 볼까요?
나뭇가지의 섬세한 묘사, 어스름하고 아름다운 별과 하늘. 잘 그린 것 같긴 한데, 들여다볼수록 뭔가 어색하게 느껴져요. 네, 루소의 그림에는 원근법이 없기 때문이죠. 사실적인 색이나 비례를 사용하지도 않았고요.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같죠. 우리가 봐도 어색함이 느껴지는데, 전문 화가들의 작품만 봐왔던 사람들이 루소에게 좋은 평가를 남길 리가요.
오랜 시간 꾸준히 작품 세계를 구축했는데 비전문적이고 어색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포기하고 싶을 것만 같은데요. 혹은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라 불평할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루소는 조금 달랐어요. 루소는 자신이 그 누구보다 뛰어난 화가라고 굳게 믿었고 흔들리지 않았답니다. 이런 믿음은 그의 초상화인 <나 자신>에 잘 나타나요. 원근법과 비례를 무시한, 그럼에도 화가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파리라는 배경, 만국박람회라는 시대상이 완전하게 담겨 있는 그림이죠.
🌳정글 없는 정글 그림?
주류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낯설고 뛰어난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비난만 받던 루소의 작품도 점차 인정을 받게 돼요. 현실적이지 않은 그의 그림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거든요. 어느덧 49세가 된 루소는 세관원을 은퇴하고 전업 화가가 되어 그림에 더 집중하기 시작하죠.
전업 화가가 되어서도 루소 특유의 그림 양식은 변하지 않는데요. 루소 작품의 독특한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자연을 표현하는 그만의 방법이에요. 자연 그리기를 것을 좋아했던 루소는 ‘정글’을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답니다. 이질적인 소재의 배치와 다양한 색감, 입체감 없는 표현 덕분에 이국적이고 환상적으로 느껴지죠.
루소는 젊은 시절 멕시코로 파병 갔을 때 본 정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는데요. 살짝 어이 없게도 이는 사실 거짓말이에요! 루소는 멕시코로 파병을 간 적이 없으니까요! 따라서 루소는 실제로 정글을 본 적이 없어요. 다만 정글을 보지 않고 그렸다고 말하는 것이 껄끄러워 거짓말을 한 것이죠. 그렇다면 본 적도 없는 정글을 어떻게 그렸던 걸까요? 일요화가로 지내던 시절부터 루소는 박물관과 미술관, 식물원을 자주 갔는데요. 이때 본 식물들로 자신만의 정글을 만들어 냈던 거예요. 동물은 박제된 동물을 보고 그려낸 거고요. 그래서 루소의 그림 속 식물들은 열대 지방의 식물이 아닌 프랑스와 같은 온대 기후의 식물들이에요. 실제 정글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서 더욱 큰 인상을 준 것이 아닐까요? 루소가 미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독특한 화풍을 남길 수 있었던 것처럼요.
💖원 앤 온리 루소!
1908년 그에게 일생에 다시없을 큰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여겨지는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가 우연히 루소의 그림을 보고는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 것이죠. 당대 유명 화가였던 피카소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루소 인생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어요. 이후 루소는 죽기 전 2년 동안 이전에 없었던 인정을 받으며, 평생 꿈꿨던 ‘위대한 화가’가 되었답니다. 피카소는 루소의 그림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던 걸까요? 이 질문은 현대까지 아우르는 루소의 중요한 의의를 발견하게끔 합니다. 그의 그림이 가지는 가치는 단순히 주류 미술을 벗어났다는 것 그 이상이거든요.
이전까지 그림은 직접 대상을 보고 표현했어야 했어요. 표현 방법에 사실주의니, 인상주의니 하는 흐름이 있었을 뿐 그 과정에는 변화가 없었던 것이죠. 그런 상황에서 온전히 자신의 생각으로 작품을 완성했던 루소의 방식은 큰 도전이 된 거예요. 때문에 루소의 미술 세계는 초현실주의로 이해되기도 해요. 초현실주의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것을 표현하는 방식을 말하니까요. 루소는 무려 정글에 소파를 두었으니,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하죠? 또 루소는 입체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대표적인 화가로 피카소를 둔 입체파는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 사물의 모습을 하나의 장면에 넣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루소 역시 원근법을 배제하고 인물을 그릴 때 다양한 각도에서 묘사하곤 했어요. 오늘날 미술의 큰 갈래로 여겨지는 두 가지 사조의 시작점에 루소가 있었다니, 오늘날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겠죠?
루소가 처음부터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 내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죠. 루소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쉬는 날마다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열정이 없었다면 끝까지 이름 없는 세관원으로 남았을지 몰라요.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이제 와서 뭐 해’하는 마음에 묻어두고 있다면, 루소처럼 행동으로 옮겨보세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즐거운 시간들이 쌓여 인생에 큰 변화를 불러오니까요! 좋아하는 일을 자신감을 가지고 마음껏 해낸 루소가 대단하면서도 부러운데요. 저도 시간이 날 때는 제가 좋아했던 일들에 한 번씩 도전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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